작가노트
 

 

본인은 세가지 형식으로 작업하고 있다. 설치와 입체 그리고 평면이다. 2004년부터 계속 연구한 작업의 형식은 평면의 이미지를 여러 장의 이미지로 겹쳐서 여러 장의 평면들이 입체 공간을 창출하는 것이다. 최근에 진행하고 있는 입체 작업은 육면체 안에 여러 장의 평면 이미지를 결합시켜 육면체 안에 이미지들을 설치하는 작업이다. 이 작업은 대형 설치 작품을 축소 시킨 것과 같다. 중첩된 이미지들은 LED와 결합하여, LED를 켰을 때와 켜지 않았을 때, 각각의 다른 이미지들을 한 작품에서 볼 수 있다. LED는 2007년부터 작업에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여러 겹으로 겹치는 이미지들 사이에 조명을 설치하여 더욱 드라마틱한 분위기를 의도하였고, 별자리 이야기를 재해석하면서 LED사용은 별의 형상을 더욱 강조시켜 주었다. 최근 작업에서 LED는 무대의 조명과 같은 역할을 한다. 육면체 공간은 연극을 위한 무대와 같다. 신화나 별자리 이야기, 오페라의 스토리 또는 아리아, 클래식 음악의 주제, 책에서 얻은 주제 등을 작은 무대에서 새로운 이야기로 재해석 한다. 삶은 무대 위의 연극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각기 자신의 배역을 연기하는 것이다. 무대는 생물학적 몽상과 건축학적 이미지 그리고 공기적 상상력(별, 달, 구름, 빛, 바람)들이 결합되어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의도하고 있다. 현실에서는 보지 못하는 꿈에서나 볼 수 있는 공간이다. 보이지 않는 공간, 현실에서는 보지 못하는 공간, 내가 또는 우리가 꿈꾸는 공간, 머물고 싶은 공간을 창출하고 싶다.

 

-김진화 작가노트 중

 

작품설명 -밤으로의 여행 (Acquainted with the Night) 

이 작품은 크리스토퍼 듀드니(Christopher Dewdney)가 쓴 “밤으로의 여행(Acquainted with the Night)”을 읽고 내게 다가온 이미지를 작품으로 옮겼다. “오랜 비밀이 깃든 밤의 세계로 낯선 탐험이 시작된다” 라는 글귀는 나를 신비한 이미지로 이끌었다. 본인의 작품에서 사용되는 LED는 대부분 간접 조명으로 육면체 공간 안에서 무대 조명과 같은 역할을 하겠지만, 때론 빛의 의미를 부각시키기 위해 직접 조명으로도 사용될 것이다. 이는 공기적 상상력(별, 달빛..)을 더욱 드라마틱하게 강조하기 위함이다. 본인의 작업에서 가장 강조 되어지는 내용은 인간의 상승 본능이다. 상승본능을 다양하게 나누어 볼 수 있지만, 별과 달이 가지는 상징적 의미인 “희망과 꿈”은 인간이 가지는 가장 강한 상승 본능 일 것이다. 본인은 관객들이 본인의 작품을 통해서 잠시 망각했던 “희망과 꿈”을 다시금 느낄 수 있길 바란다.


 

작품설명 -오렌지 향기 바람에 날리고..( The Air is Sweet with Orange Blossoms)


이 작품은 Pietro Mascagni가 작곡한 오페라 “Cavalleria Rusticana”의 전주곡인 “오렌지 향기 바람에 날리고..(Gli aranci olezzano)”를 재해석한 작품이다. … 오렌지 향기가 하늘에 지듯 우리들의 향기도 지리 종이 울리네 숲 속에서 새들이 무상을 이야기하네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소년들은 노래를 부르네.. 앵그르(Jean-Auguste-Dominique Ingres, 1780~1867)의 오달리스크(Grand Odalisque) 작품을 차용하였다. 화려한 무도회의 가면을 쓰고 꽃 잎 위에 살포시 누워있다. 오렌지 향기는 커튼과 함께 바람에 날리고, 공중에 둥 떠있는 오렌지 나무들은 점점 멀어져 가고 멀리서는 교회 종소리가 들린다. 1장과 2장에 표현된 오렌지색 나뭇잎들은 이상을, 3장의 반복된 정방형 형태는 현실을 상징하고 있으며, 이상을 꿈꾸는 우리의 인생과 인생의 무상함을 대조시켜 인간의 상승 본능을 표현한 작품이다. 가면(mask)은 자신의 참 모습을 감추고, 그 가면이 가지고 있는 상징적 이미지로 보여진다. “자아”를 감추고, 보여지기 원하는 “타자”로 보여지는 것이다. 심리적으로 우리는 자신의 모습을 다른 이들에게 감추고 싶을 때가 많다. 또는 자신이 처한 환경이나 모습이 다른 모습이었으면 하고 바랄 때도 있다. 그래서 영화나 소설 등을 통해 대리 만족을 느낀다. 가면의 기원은 원시시대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사냥을 위해서 동물들에게 약한 인간이 아닌 동물들에게 위협을 줄 수 있는 강한 모습으로 보여지기 위한 것이었다. 이 또한 “자아”가 아닌 다른 모습으로 보여지기 위함이었다. 인간의 상승 본능이다.
 
 
평론요약
 

 

보이지 않는 세계로의 여행

 
 

 

예술가의 특권은 무엇일까? 혹자는 고통스럽지만 은밀한 즐거움을 느끼는 창조활동이라고 하고, 혹자는 금지된 것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이라고도 말한다. 다양한 의견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뭐니뭐니해도 무한한 상상력의 자유로운 표현 아닐까? 예술가는 무한한 상상력으로 잠을 자지 않고도 꿈을 꾸는 사람이다. 존재하지만 감각적인 형태로는 존재하지 않는 생각이나 상상력의 산물은 예술가에 의해 이미지화된다.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역의 세계까지 표현해 내는 것이야 말로 예술가의 특권이 아닐까 싶다. 김진화의 작품을 보면 작가의 무한한 상상력이 동원된 추리소설이나 알쏭달쏭한 그림동화를 읽는 기분이 든다. 건축적 구조물이나 정방형의 무늬가 가득 찬 복잡한 배경에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사람과 사물이 어지럽게 나열되어 있는 그녀의 작품은 퍼즐 맞추기나 수수께끼를 풀어가듯 온갖 생각과 지식을 총동원하게 만든다. 따라서 왠지 비밀스럽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지만 솔직히 어렵다. 김진화는 별자리, 사물이나 건축물의 형태, 정방형, 낙서와 같은 드로잉에 관심이 많다. 그녀에게 별자리는 곧 꿈과 이상을 의미한다. 별은 어두운 밤하늘의 작은 빛이지만 어두우면 어두울수록 더 잘 보이고 더욱 반짝거린다. 사는 것이 힘들면 힘들수록, 현실과 이상의 간극이 크면 클수록 더욱 간절하듯이... 또한 사물이나 건축물의 형태나 정방형에 대한 관심은 그녀의 성격과 관계가 깊다. 어려서부터 항상 뭔가를 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 게 있어서 항상 어떤 구조물을 보면 모서리와 모서리를 연결해 가상의 선을 그어본다거나 칸을 만들어보는 습관이 있었다. 지금도 그녀는 생각이 많고 꿈이 많고 논리적이며 부지런한 사람이다. 또한 시와 음악을 좋아하고 책읽기가 취미이다. 어쩌면 우리가 화가하면 떠올리는 모습보다는 모범생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사람이다. 최근 김진화는 시각적으로 보여지는 사물이나 건축물의 형태와 구조에서 인간내면의 정신적‧ 심리적인 측면과의 연관성을 찾아내는데 열중하고 있다. 특히 책과 음악, 여행 등을 통해 얻은 영감이나 감동과 사색 혹은 인간내면의 다양한 심리상태 즉 불안, 집착, 욕망, 이상과 꿈, 갈등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의 시각화에 관심을 갖고, 사물과 건축구조의 공간적 재구성 위에 신화적․역사적․문학적 알레고리를 끌어들여 시나 소설을 쓰듯 그림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알레고리를 차용하는 근저에는 감성적이기보다는 이성적이고 논리정연하고, 동기와 이론적 체계를 중시하는 작가의 성향이 깔려있다. 작품 <상상적 추락>을 예로 들면 반복되는 원형계단에서 추락의 이미지를 발견해 내고, 말을 타고 추락하는 비너스와 새와 물컵 속의 물이 떨어지는 모습을 삽입하고 있다. 생명의 탄생이자 미의 탄생을 상징하는 비너스가 추락한다는 것은 근원적인 것의 추락을 의미하는 것으로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꼼짝달싹하지 못한 채 모든 것이 흔들리는 상황을 암시한다. 이와 같이 김진화가 만들어낸 화면 안에는 사물의 구조가 가진 시각적 착각(환영)과 작가의 심리상태간의 절묘한 교차가 이루어지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의 긴밀한 긴장감이 존재한다. 김진화의 그림은 자신의 시각적 심리적 체험의 개별적 특성을 유형화하고 그것을 알레고리화하거나 상징화하기 때문에 비밀스럽고 주관적인 풍경처럼 보인다. 그러나 동시에 보편적 상징의미를 지닌 알레고리들을 제시하기 때문에 공통적이고 보편적 심리상태가 적용될만한 내러티브를 획득한다. 이밖에도 김진화의 작품은 몇 가지 이중적 성격을 지닌다. 계산되어진 일정한 질서와 반복적 이미지의 사물이나 건축구조물이 가진 기계적이고 건조한 특성 위에 내러티브를 지닌 신화나 정신분석학적 상징체계들이 도입됨으로써 김진화의 그림은 서사적 구조로 환치된다. 즉 그녀의 그림은 지적이고 직관적인 반면 감성적이고 무한한 상상력을 동원하게 한다. 또한 전통적(신화적․철학적․문학적) 기반을 지닌 알레고리와 작가가 만들어낸 상징적 이미지들이 혼재되어 있기 때문에 작가의 의도나 등장 이미지가 갖는 전통적 의미 이상의 해체적이고 다양한 열린구조로 해석이 가능하다. 형식적인 면에서 여러 장의 판넬을 겹치는 방식이나 복잡한 구조물의 배경은 그림을 암호화하고 상징을 극대화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즉 겹쳐진 판넬 장치나 창문, 반복된 계단 등은 들여다보고 그 안으로 빨려들게 하는 요소가 되어 때로는 판타지의 세계로 끌어들이기도 하고 심리적‧정신적 내면의 세계 혹은 보이지 않은 세계로 안내하는 통로 역할을 한다. 내가 만난 그녀는 작은 체구로 온몸과 마음을 불살라 다소 힘들고 머리 아픈 작업을 하고 있는 듯 보였는데, 정작 스스로는 창작활동 자체를 그저 즐긴다고 말한다. 이 얼마나 대단한 경지인가 싶다. 김진화는 살아가야 할 날들 동안 보이지 않는 세계에 담겨있는 보물들을 하나씩 발견하여 그것들을 조형화시키고 싶다고 말한다. 조용히 진지한 자세로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김진화를 보며 내성적이고 착실하고 이성적인 사람의 열정은 즉흥적이고 감성적이며 감정표현에 적극적인 사람의 열정보다 훨씬 더 뜨겁고 깊다는 생각을 해 본다.

 
 

김희랑 _ 광주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