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신춘문예] 불행한 추상 그리하여 행복한 추상-양수아론

미술평론 당선작

정현아

 

 

 

.추상의 이면

 

양수아는 오직 진경(眞景) 속에서만 존재를 드러낸다. 진경은 문인화가들이 그들의 사상과 이상이 담긴 참된 풍경을 구현하고자 산천을 찾아 다니며 실제로 존재하는 명산과 진풍경들을 통해 건져낸 상상 속의 경치이다. 양수아는 일생 동안 진경 속에 존재하기를 희망했고, 그 진경 속에서 존재하기 위해 철저히 실경(實景) 속에서 살았다. 실경 속에서 진경의 상징적 의미를 건져내는 일이 곧 이상적이고 참된 진경을 일구어 내는 일이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먼저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추상화가 양수아’의 작품 가운데, 구상작품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그리 단순하게 치부될 수 없다.

 

양수아의 구상은 실제 존재하는 사물과 풍경을 많이 담고 있지만, 그 풍경과 사물 그리고 그들이 있는 세계는 본래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가시 세계에 존재하는 것들을 상상을 통한 물화(物化) 과정으로 타블로 위에 불러들인, 그래서 실재 세계 안으로 편입시킨 상징적 진경이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양수아의 진경 속에 반복되어 등장하는 모든 존재들, 특히 인물(작가 자신도 포함하여)이나 사물, 혹은 풍경들은 존재하는 사실만큼 늘 변함없이 그대로인 듯 보이지만, 실은 양수아의 시선 안에서는 이것마저도 하나의 이름으로는 도저히 정의할 수 없는 변화무쌍한 상상의 소재가 된다. 그래서 양수아에게는 가시적 세계 내에서 조차 그 어느 것도 보이는 그대로인 것은 없다. 너무도 변화무쌍하여 상상을 통해 물화시키지 않으면 규정할 수도 없는, 타블로 위에 나타난 존재의 참모습의 퍼레이드야말로 양수아가 일구어낸 구상들인 것이다.

 

 

양수아의 회화는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그의 조형 세계는 현실인 듯 상징인 듯 구상과 추상 사이를 유영하며 타블로 위에 ‘추상(抽象)의 과정’ 그 자체를 재현한다.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무수한 실경의 존재들이, 다양한 변화과정을 통해 진경의 세계로 편입되는 과정자체를 재현하는 것이다. 추상과정의 재현은 구상회화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1950년대를 전후로 한 국내 사정, 특히 자연주의 계열이 절대 대세를 이루고 있었던 당시 양수아의 활동 중심지인 광주의 상황 안에서는 한번도 제기된 적 없는 추상화(抽象化) 자체에 대한 철저한 물음을 내포하고 있다. (각주 1 양수아가 앵포르멜에 대해서 쓴 글 가운데 이런 구절이 있다. “미지에 도달하려면 미지의 길을 통해 서 가야 한다.” 서구의 작가들에게는 뜨거운 추상인 앵포르멜이 당연한 표현의 몸짓으로 말해질 수 있는 것이었겠지만, 양수아를 비롯한 동아시아 작가들에게 그 길은 영원히 미지의 길일 수밖에 없다. 양수아는 그것이 미지의 길임을 알았고 도달하려는 방법 역시 미지의 길 위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미지의 길을 가고자 미지의 방법을 찾았던 양수아에게, 추상화 과정인 ‘물화’를 타블로 위에 재현한다는 것은, 되물어지고 시도된 적 없는 방법이라는 면에서 미지의 방법이었고 그로서는 아주 성실한 해답 찾기의 일환이었다라고 할 수 있다. 양수아, ‘앵포르멜에 대하여’『瑞光』광주사범대학 학도호국단 1958. p. 76.) 이것은 추상화가 구상화와 어떻게 다른가 하는 근본주의적 질문을 벗어나 있음으로써 오히려 물성의 세계 내적 가변성, 즉 사물의 운동에 대한 철저한 탐색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양수아의 물화 과정과 그 방법이 추상 과정의 재현이라고는 해도 구상적 표현 방식에 근거하는 이상, 추상이라고 단언하는 일에는 역시 주저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사실이다. 양수아 자신도 말했듯 구상은 생활을 위한 위조 지폐에 불과하다고 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이러한 의심은 한국에서 정신 수용을 생략한 채 형식만으로 앵포르멜이 유입된 과정에서 정신수용과정을 자체적으로 생성해야만 했던 상황적 필연성으로 불식되고 만다. (각주 2 앵포르멜 정신 속에 흐르고 있는 추상성은 전통적으로 우리의 정신 세계 속의 추상성과 공통되고 있어서 양수아가 수행했던 물화 과정이 전통 양식의 일부와 공존할 수 밖에 없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 근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양수아의 물화 과정은 한국에서 부재한 정신 수용의 과정을 자체적으로 생성하면서 생긴 불가피하고도 필연적인 과정이었고, 따라서 구상을 통한 물화 과정이 말해주고 있는 것은 보여지는 그대로의 구상이 아닌 앵포르멜의 정신 생성을 위해 물의 정신과 에너지를 포획하는 과정이 바로 물화 과정이었던 셈이다.

 

따라서 한국 앵포르멜의 진의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또한 양수아의 회화적 사고와 그의 작품 세계가 지금 거론되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가 타블로 위에서 보여준 것은, 추상화(抽象畵)가 원래부터 거기 있었던 듯 흉내 내고 모방하여 그려지거나 한 개인의 절대적 상상과 무의식의 세계에 속한, 일반적 소통과 이해가 불가능한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구상이든 추상이든 현실세계를 바라보는 고정되지 않은 시선이 물의 원천적 에너지로 환원하여 타블로 위에 새로이 발견될 수 있을 때 고정된 형태가 아니어도 충분한 설득력을 가질 수 있으며, 바로 그 때 예술의 의미 역시 성립된다. 양수아의 물화 과정은 오늘날 명징한 시각으로 경험할 수 있는 물질 세계의 재현으로 존재하는 모든 캔버스 위의 ‘텅 빈 구상’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양수아의 작품해독은 먼저 구상작품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왜냐하면 양수아가 그린 거의 대부분의 구상작품이야말로 물화과정 자체를 보여주는 추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각주 3 이 말은 양수아가 현대회화의 선구자라는 기원론의 근거에 대해 오광수가 적확하게 고백했던 ‘실증적, 물증적 증거가 전부가 아니다’라고 하는 견해와 같은 선상에 있다. 그는 양수아의 앵포르멜 이후의 방법적 전개에 있어서 같은 맥락을 이루며 일관되고 있는 점에 중요점을 두고 이것이 비정형 회화의 최초의 시도자로서 자리매김하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필자는 양수아의 앵포르멜 작품을 포함한 이전의 구상작품들 속에서까지 일관되고 있는 추상적 조형인식을 읽어내고자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오광수, ‘양수아의 예술’, 『격동기의 초상-양수아-꿈과 좌절』, 광주시립미술관 2004. p. 22.)

 

 

 

. 구상을 넘어서, ‘시적’ 현실로

 

실경을 통해 이상적 진경을 그리는 일은 비단 문인화가뿐만 아니라 회화기술과 기교를 중시했던 직업 화공들에게도 그 중요성은 지속적으로 강조되어 왔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문인들은 진경에 포함되어 있는 사상과 정신에 먼저 그 중점을 두었다는 데 초점을 두어야 한다. 동아시아의 근대미술에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정신의 문제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동아시아에 유화 유입 이래 행해졌던 모든 근대미술에 관한 논의는 적어도 고유의 회화정신과 관계하지 않고서는 존립할 수 없는 것이었고 그것은 곧 전통의 문제로 이어졌다. 이것은 앵포르멜 후기의 작가들이 중요시했던 액션을 통한 서법의 원리를 담은 작품들의 연원을 동양의 서예에서 찾았기 때문은 아니다. 정신수용 과정이 생략된 채 유입된 앵포르멜을 고유한 회화정신과 연결하여 생각하는 일은 곧 근대미술에 있어서 정신을 함축하는 방식이었고 따라서 고유의 정신은 전통이라는 양식을 통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양수아가 보여준 구상작품 안에서 그림에 글을 넣는 재화시의 형식을 채택한 적이 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실제 양수아는 한국 문인화 중심 지역인 호남출신 작가이며 그의 15대 선조 팽손(彭孫)은 한문학의 거장으로서 호남 한국화의 대가였지만, 이것만으로 그가 재화시를 형식적으로 차용한 이유의 전부로 이해하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오히려 양수아는 회화에 있어서 정신의 문제를 우선에 두었고 그 방법에 있어서 전통양식이며 문인들의 방식인 재화시를 채택했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재화시는 화폭에 담긴 혹은 화재(畵材)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을지라도 표현되어진 회화적 감흥을 언어로 표현해 낸다. 즉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많은 이상화된 이미지들을 개인적 감흥에 기대어 표현하는 작업이 재화시이며 이들 이미지를 구체적인 언어로 ‘물화(物化)’해낸 작업이 바로 재화시인 것이다.

 

‘물화’는 추상화 특히 앵포르멜에 있어서는 굉장히 중요한 키워드이다. ‘물화’가 앵포르멜에 있어서 중요한 이유는 물()자체가 가진 의미 때문이다. 의도적인 조형이나 의미를 지니는 조형의 생성을 부정하고 표현도구로서 가지는 물질 그 자체의 느낌들을 통해 조형적 의미와 표현의미를 생성해내는 것이 앵포르멜이라 한다면, 물화‘된’ 것의 표현의미는 곧 앵포르멜 전체를 지배하는 ‘물()’을 의미한다. 작품 ≪기차 안에서≫에 보이는 시()를 통한 ‘물화(物化)’의 방법은 이러한 ‘물()’의 의미에 다가가기 위한 한 과정이다. 작품 속에는 정작 ‘너’도, 늦은 봄 떨어지는 ‘벚꽃’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기차 안에서’ 떨어지는 벚꽃을 바라본 순간을 그려내고 그때 떠올렸던 손에 잡히지 않는 어떤 이미지와 느낌들을 물화(物化)해 내기 위한 수단으로 시(각주 4 특히 시()장르가 가지는 ‘주제의 암시’라는 추상적 성격을 이해한다면 양수아의 재화시가 갖는 역할이 단순히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는 이미지를 물화해내는 것 것뿐만 아니라 작가적 이미지를 내부에서부터 암시하여 표현하는 추상화(抽象化)역할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를 도입하고 있는 것이다.

 

‘물화(物化)’는 작가가 본 것이든 내부에서 떠올려 낸 것이든 그것의 이미지를 실재세계인 화면에 구현(具現)하는 행위이다. 이것은 화면에 구현하는 행위의 의미로서도 중요하지만 현실과 맞닿아 현실을 감지해내는 기능을 한다는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현실을 감지해내는 기능은 물화의 구체성에도 실제로 관여하고 있다. 이미지를 구현해 내는 것은 이미지에 대한 구체성을 내부에서 확립하여야만 하고 그 구체성은 현실과 연결된 언어행위로서 발휘될 때에 더욱 힘을 가질 수 있다. 그래야 구현된 이미지는 비로소 추상적 이미지로서의 조형과 유화구(물감)라는 표현재제로 다시 환원시킬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조형 이미지와 언어 사이를 오가며 정형화 혹은 비정형화해 가는 과정을 통해, 물화된 조형들 간의 관계와 의미형성의 항들을 인식해 나가는 양수아의 작업은 한 동안 계속된다. 그것은 양수아 자신이 포착한 각각의 단어들의 형용사나 추상명사 혹은 보통명사를 이미지들로 구체적이고도 간략한 구상과 추상을 넘나들면서 조형화 해내는 방식을 거친다. 그리고 이러한 언어와 조형이미지 사이의 물화과정이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본격적인 앵포르멜 작업이 진행되고 난 다음인 60년대 후반에 나타나는 그의 일련의 작품 가운데, 구체적인 타이틀을 가진 작품으로서는 몇 안 되는 ≪태동≫, ≪잉태≫, ≪빛≫, ≪자유≫등에서 보다 확연히 보여진다.

 

추상조형의 어떤 전형을 보여주는 것과 같은 작품 ≪태동≫에서는 인간이 발생하기 이전과 발생 순간의 아득함을 보여주고 그것은 모두 눈에서 시작되는 듯 눈의 형상으로 그려진 한 점에서 이 조형은 시작되고 완성된다. 눈으로 어떤 이미지를 보든지 내면적 시각으로 구체적으로 포착되지 못하면 결국 앵포르멜의 물화과정은 의미를 잃고 만다. 양수아가 학생들을 가르치던 아틀리에에서 자주 구긴 신문지 뭉치를 과일 크기로 뭉쳐 놓고 과일 정물을 그리곤 했다는 일화는, 앵포르멜에 있어서 사물과 이미지 사이에 공존해야만 하는 물화과정이 그에게 얼마나 필연적이었는가를 말해주는 단적인 예이다. 그런 의미에서 ≪태동≫은 내면적 시각으로 형성된 구체적 이미지의 태동이고 물화된 태초의 이미지인 것이다.

 

작품 ≪빛≫이 갖는 타이틀과 조형 간의 설득력은 더욱 긴밀하다. 얇은 종이 위에 알 수 없는 혼란과 아득함으로 겹겹이 얹힌 유채물감 사이로 한 줄기의 빛이 새어나가고 그 때문에 얼기설기 얽히어 있는 색색의 유화구는 더욱 단단하게 응집된다. 양수아는 구체적인 형상도 어떤 형태도 띠고 있지 않은, 얽히고 설켜 단단해진 유화구(油畵具) 덩어리 안에서 한 줄기의 빛을 발견하는 것이다. 응집된 유화구의 질감만으로 이루어진 추상조형들의 이러한 긴밀성은, 작품구성이 내면적 시각으로서 구체화되기 위해 내부에서 어떠한 심상변화가 일어나는가, 하는 과정 그 자체를 물화해내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며 이것이 바로 양수아가 작품에서 구현하고자 한 힘이다.

 

 

 

.‘반복’의 의미

 

고정된 형태는 없고 사물의 물성만이 존재하는 세계가 추상의 본질이라면, 추상을 통해 사물의 본질을 표현해 낼 수 있는 내적인 근거가 작가에게는 필요하다. 양수아에게는 이러한 내적 근거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이 물화과정을 체현하는 일이었고, 가시세계로부터 순수하게 본질만을 걸러낼 수 있는 새로운 이미지의 발견방법으로서 ‘반복’의 방법을 채택한다. 사물과 존재 하나하나에 대한 다양하고 파생적인 모습들을 담아내기 위해 소재를 반복하여 다루고 이를 통해 고정된 형태의 존재자체에 대한 또 하나의 물화과정을 담보하는 것이다. 즉 특정소재를 반복하여 작품화하여 소재가 갖는 고유성이나 소재적 필연성을 약화시킬 때 드러나는 주제의식을 의식적으로 소거하는 과정을 거침으로써 결국 소재와는 관계없는, 캔버스 위에 순수하게 물화된 조형으로 구현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굳이 양수아가 반복을 통한 물화과정을 재현한 것일까. 조형의 물화과정은 현실적 근거가 탈각된 상황에서 유입된 앵포르멜에 대한 인식을 생성하기 위한 동아시아 작가들의 필연적 통과의례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앵포르멜 정신의 수용과정은 반복을 통한 구체적인 ‘물화과정’을 거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각주 5 추상화가(抽象畵家)의 대부분의 작가들에게 이러한 과정은 마치 자동적으로 순식간에 이루어지거나 아니면 이러한 과정들 자체가 아예 없었던 것처럼 생략 되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 구상과 추상의 교묘한 혼선들로 이루어지고 있었던 50년대를, 작품제작의 구심점의 시기로서 살았던 작가들에게 그 과정자체는 아주 치열했던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추상이 궁극적인 지향점이었던 양수아가 구상 속에서 추상에로의 길을 발견하려는 과정을 궁구했던 것처럼, 같은 시대 일본에서 구상을 최종적 조형의미로서 고수했던 조양규의 경우도 구체적인 조형의미를 찾는 방법에서는 추상적 방법을 적극적으로 도입했던 것이 그 단적인 예이다.) 양수아에게는 물의 본질을 표현해내는 내적 근거와 앵포르멜의 의식의 수용과정이 함께 필요했고 이 모두를 생성할 수 있는 방법으로써 소재반복이라는 과정 자체에 의미를 두는 작업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러한 정신수용과정뿐만 아니라 반복을 통해 이야기를 지우고 주제의식이 사라진 물화된 조형은 의미상 현실개입이 더욱 용이하고 즉각적인 모습으로 다시 발견된다. 즉 구상이라는 구체적 스토리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스토리와는 별개의 의미로 물화된 조형의 현재적 의미로써 이야기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반복을 통한 물화과정은 일련의 ≪자화상≫(을 통해 성실히 반영되고 있다. 양수아가 시도한 ‘반복’은 단지 반복되어지는 대상을 통해서 일관되고 특수한 이미지들을 발견하거나 표현해내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러한 반복이 역으로 고정되기 쉬운 어떤 구체적인 대상을 여러 양상들로 표현해 내고 그로써 고정된 이미지로부터 벗어나고자 한 의도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즉 이들 ‘자화상’은 같은 제목으로 제작되었긴 하지만, 어떤 것이 진짜 모습인지, 정말 양수아의 자화상인지 규정할 수 없을 만큼 각기 다양한 모습과 이미지로 표현되어 있다. 우선 이것만으로도 ≪자화상≫이라고 명명되어 있을 뿐 작품자체의 정체성이나 필연성은 더 이상 중요 한 것이 되지 못하고 만다.

 

게다가 다양한 ≪자화상≫의 존재는 소재의 정체성이나 주제의식의 불분명함을 초월하여 ≪자화상≫과 유화로 그려진 ≪자화상≫과 같이 소재와 조형성을 넘어서 존재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각각의 다양한 ≪자화상≫들은 캔버스 위에 하나의 완벽하게 물화(物化)된 조형으로 부상하기 위한 과정으로서 존재한 것이었으며 결국 ≪자화상≫이라는 고유성이나 필연성을 떠나 형태를 초월한 하나의 덩어리로 화면에 존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풍경’에서도 ‘자화상’에서와 마찬가지로 같은 반복을 통한 추상화 과정을 보여준다. 60년대 그려진 풍경들만을 한정해서 보아도 ‘풍경’은 60년대 후반이 되면 추상화 표현에 가깝게 변화한다. 이러한 작업들은 양수아가 어느 특정 풍경을 재현하지만, 궁극에는 풍경이 남겨놓은 이미지만을 캔버스 위에 부상(浮上)하도록 하기 위한 물화과정이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이러한 현현방식은 6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되는 양수아의 추상 작업이 왜 캔버스 위를 부유하듯, 그리하여 떠올라 있는 형태를 취하는가를 알 수 있게 한다. 결국 구상작업을 통해서 보여주었던 물화과정들은 양수아의 구상작품에 대한 이해방식은 물론 추상의 존재방식마저 제공하고 있었던 것이다. 달리 말해, 양수아에게 추상에 이르는 길은 ‘구상’으로부터 오랜 기간 숙성되어온 ‘과정’을 경유함으로써만 가능해진 경로가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양수아의 ‘추상’이 과도한 형식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즉 한국의 엥포르멜 회화의 경우 회화에 대한 반성을 형식적으로 문제 삼는 것에 그쳤다면 양수아는 추상에 이르는 ‘과정’을 캔버스 위에 남겨놓음으로써 추상이 곧 현실의 문제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알려주고 있다는 것이다. 근대사의 갖은 질곡을 온 몸으로 경험한 그에게 현실을 구상으로 재현하는 것은 폐허로 변해버린 이 땅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었던 셈이고 그리하여 추상은 보다 근본적인 현실로 상승하기 위한 회화적 전략이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서구회화에서 추상이 회화의 운명을 종국으로 이끌었던 것과 달리 양수아에게 추상은 ‘시작’의 다른 이름이었다. 실질적으로 양수아의 이 선택은 그에게 매우 불행한 결과를 초래했지만, 현실의 장벽에 가로막힌 ‘자유’로운 조형의 가능성을 확인하게 해준 행복한 선택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주의 깊게 살펴야 하는 것은 당대의 현실에서 추상이 현실로부터 도피한 의혹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양수아에게 있어서 ‘추상’은 현실과 세계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어두운 채색과 폭발하는 듯한 추상의 어법들은 침묵하고 있는 사물에 생명을 부여하기 위한 방법이었던 것이다. 이는 근대사의 질곡을 경험함으로써 이루어진 선택일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모두에 말했듯 그가 회화를 ‘운동으로서 정신’의 문제로 여겼기 때문에 가능해진 성취가 아닐 수 없다.

 

 

 

.‘추상’의 지평 위에서

 

캔버스 위를 부유하듯 떠 있는 형태의 조형은 양수아가 추상으로 가는 물화과정에 의문을 던졌고 그 의문에 대한 해답 찾기를 성실히 이행한 끝에 체득하여진 결과라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런 의미에서 양수아의 작품을 “요약된 시간의 순화와 공간 속에 확산하는 미의식이 규범을 넘어서 하나의 행위로 발현된다”(각주 6 이경성, '근대한국미술가논고', 일지사, 1978.)고 한 이경성의 표현은 적확하다고 할 수 있다. 한 겹 한 겹 쌓은 물화과정으로 요약되는 시간은 순화된 이미지들로 변모하고, 그 이미지들이 더 이상 캔버스 밑에 그대로 쌓여 있지 못하고 부유하여 떠오르면서, 원래의 대상은 사라지고 본질적 이미지만이 공간을 메우게 된다는 의미에서 그러할 것이다. 이는 단순히 한 덩이의 추상이 캔버스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는 의미와는 다르다. 작업의 순서로만 본다면 켜켜이 쌓인 물()의 이미지를 유화물감이 전체적으로 그 위를 덮고 있는 듯 보이지만, 양수아는 이 작업을 통해 오히려 물()의 이미지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는 형상을 보여준다. 게다가 이러한 작업방법은 아직 캔버스 위에 드러나 있지 않는 물()의 이미지마저도 명확히 암시해주고 있다.

 

이 드러나지 않은 이미지는 양수아가 그동안 수행해온 물화과정의 성과이다. 숨겨진 이미지의 암시를 통해 그 동안 획득했던 물화과정에 대한 해답을 그 나름으로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왜냐하면 물화과정에서 켜켜이 쌓여진 이미지가 결국 부유하는 한 덩이의 추상 이미지를 이루고 있지만, 그것은 곧 물화된 하나의 이미지로 표상된 것이다. 즉 물화과정을 통해 얻은 것이지만 그것은 이미 과정이 아니라 물화되어진 하나의 이미지가 된 것이다. 따라서 과정 자체는 암시의 방법을 통해 표면적으로 없애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는데, 그것은 과정이 앵포르멜에로의 길에서 필요한 방법일 뿐 그 자체가 앵포르멜이 될 수 없다는데 있다. 그러나 일부러 없애는 행위는 더욱더 그 존재를 강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암시의 방법으로 과정의 흔적만을 살짝 없애려 했던 물화과정은 오히려 캔버스 안에서 존재의미가 강조되는 결과를 가져왔고, 그래서 부유하듯 떠오른 조형뿐만 아니라 감추어진 이미지조차도 의미의 한 부분이 되어버린다. 뿐만 아니라 감추어진 이미지는 캔버스에 떠올라 있는 이미지의 가능성만큼이나 현현되지 않은 또 다른 새로운 이미지의 부상마저도 포함하고 있는 까닭에, 현재 진행 중인 물화과정의 보이지 않는 암시로써 더욱 힘을 얻게 된다.

 

≪자유≫(1971)는 이러한 양수아가 획득하게 된 이미지들에 힘입어 조형적 자유를 총체적으로 시도하는 작품이다. 여기에는 부유하듯 떠오르는 조형도 없고 물화과정을 암시하는 감추어진 이미지도 없다. 아니, 이미 더 이상 떠오르는 조형이 어떤 의미를 갖거나 감추어진 이미지가 어떤 과정을 암시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물화한 이미지로 자유롭게 캔버스 위를 유영할 뿐이다. 그래서 양수아는 감춤도 없고 드러남도 없는, 오로지 물화된 이미지만을 캔버스 위에 체현하는 것에만 모든 관심을 쏟으며, 흰색과 검정, 그리고 청색의 색채가 자유롭고 유려하게 유영하며 추상의 세계를 현현해 내고 있는 것을 지켜볼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이 바로 정신은 존재하나 정신에 지배당하지 않는 자유로운 비구상이 스스로를 이미지화 해내는 모습이다. 여기서 비로소 얻게 되는 것은 추상이 빚어낸 우연과 느낌으로 새롭게 찾아낸 대상, 즉 앵포르멜의 세계로의 영입인 것이다.

 

양수아의 추상 작품들은 이제까지 물화과정을 통해 쌓아놓은 물()의 이미지를 때 맞게 불러낸, 추상 이미지의 재현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추상의 이미지는 이미 가시세계가 가진 에너지만으로 이미지화하여 그 원래의 모습을 초월하여 존재한다. 그래야만 작가적 정신이 투여된 가시세계의 이미지는 원래의 이미지를 벗고 제2의 이미지로 완성된 앵포르멜이 될 수 있고, 이것이 고유의 물질성으로 전환된 앵포르멜의 물의 모습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물의 속성을 알고자 한 작가적 의지는 결국에 양수아로 하여금 철저히 가시세계 속에서 물의 이미지, 즉 에너지로 전환시켰고 그것이 추상의 이미지로서 작가가 찾아내려 한 것이다. 구상세계에서 추상의 이미지를 찾아내려 한 것은 단순히 추상에 논리적 설득력을 부여할 수 있었던 이유만 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초기 앵포르멜의 생성장소에서 일어난 작가들의 자연스런 이미지 유도의 한 방법이기도 하였을 뿐만 아니라 문인들이, 바라던 이상적 경치를 위해 직접 그 경치를 찾아가, 그 실경 가운데 새롭고 이상적인 영감을 얻어 구현하고자 한 진경에 담긴 이미지의 형성방법과 그 맥을 같이 한다.

 

가시세계인 실경에 시야가 갇혀 있을 때 구상은 보이는 세계의 단순한 옮김에 지나지 않지만, 실경을 바라보는 시선이 이미 가시세계의 본질인 그 이상(理象)을 보고자 할 때는, 가시세계를 통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 즉 도달하고자 하는 이상적 진경을 보는 법이다. 양수아는 정신의 수용 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진 추상의 형태들을 다시금 구상세계에서 물화과정을 통해 탐색함으로서, 추상의 물()에 담긴 정신이란 무엇인가를 철저히 되묻는다. 그리고 양수아 내부적 차원에서 행해졌던 그 질문은 역설적이게도 정신수용의 과정을 망각해버린 앵포르멜에 대한 끊임없는 환기의 과정이었다는 것은 미술사의 맥락에서도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 추상의 지평 위를 제대로 경유할 때에만 한국의 근대회화가 성숙하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을 것임은 당연할 터이다.